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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단상

봉투

 

봉투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이다. 봉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촌지이다. 오죽하면 '김봉두선생'이라는 영화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근래에 봉투와 관련하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 보게 되었다. 세모녀가 봉투에 70여만을 담아 주인 아주머니에게 남기고 함께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져있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연인즉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두딸은 신용불량에 걸리고, 그나마 큰 딸은 당뇨병 등 여러 병을 종합적으로 겪고 있는데 약값도 없어서 제때 약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면서 세모녀를 근근히 살아갔는데 어머니가 팔을 다치면서 살아갈 방법이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세모녀는 밀린 집세와 공과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봉투에 마련하고는, 아마 이 금액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었던 최후의 생활비였을 것이다, 그것을 주인 아주머니께 남기고는 동반자살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회안정망이 이렇게 허술한가 하는 점이다. 생활고로 목숨을 끊을 정도라면 사회안정망이 작동하여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을까? 설령 그동안의 수입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면 긴급생활지원 대상자는 될 수 없었을까? 해당 관청에서는 말하기를 공과금을 밀린 적도 없어서 긴급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 모녀는 최선을 다해서 이 사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막을 막은 없었던 것이다. 비유가 조금 문제있긴 해도 어떤 면에서는 이들보다 더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아니면 긴급지원 대상이 되어서 사회안정망의 도움을 받았을터인데. 오히려 양심껏 열심히 살다보니 살길이 없었던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하는 기준이 현실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완전히 망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수급대상자가 되기 어렵다. 빚을 지고 갚지 못해서 완전히 살 수없을 지경이 되서야 수급자가 된다는 건 아무리 수급을 받더라도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이다.

또 한가지, 이건 열받는 부분인데, 관련 관청이 그들이 보호대상자로 드러나지 않아서 이런 지경인줄은 알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럼 사회복지전문직은 왜 뽑아놓은 것인가. 여러가지 행정적인 절차와 서류만 만들어 낼 게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는 공무원이 되야 하는게 아닌가. 적어도 해당 관청은 주민들에게 사회안정망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못한 게 아닌가. 그러니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관청 더 나가 정부에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했던 사회복지부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모녀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는 여전히 이 사회에 남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 이런 점에 대해서 더욱 신중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저 잘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모습이다. 이런 죽음이 끊이지 않는 한 그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은 인간답게 살 생존권적 기본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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